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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케시 시장정취 궁전미학 모래산책

by 소소한공유 2025. 5. 11.

1. 전통과 삶이 뒤섞인 생생한 시장 풍경

모로코의 마라케시는 ‘붉은 도시’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북아프리카의 고대 감성과 이슬람 문화가 공존하는 곳입니다. 이 도시의 중심에는 제마 엘 프나(Jemaa el-Fnaa) 광장이 있습니다. 낮에는 과일 장수, 향신료 상인, 거리 악사, 뱀 부리는 이들이 섞여 활기를 띠고, 밤에는 이동식 음식 노점과 공연장이 등장해 진정한 마라케시의 열기를 보여줍니다.

이곳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시장의 ‘색’입니다. 오렌지, 붉은색, 황토색의 시장 천막 아래, 형형색색의 향신료 더미와 손으로 짠 융단, 유리병에 담긴 오일, 황동 램프가 빛을 뿜어냅니다. 모로코 특유의 스쿠터 소리와 사람들의 흥정 소리가 뒤섞이며 혼란스럽지만 묘한 질서가 느껴지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이곳에서 관광객들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하나의 공연을 감상하듯 전통적 삶의 현장을 경험합니다.

시장 안에는 ‘수크(Souk)’라고 불리는 테마별 골목이 이어져 있습니다. 가죽 제품을 전문으로 파는 거리, 도자기와 은 장식품이 늘어선 거리, 전통 의복인 젤라바와 바부슈를 파는 골목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걷다 보면 마치 미로처럼 계속해서 새로운 공간이 등장합니다. 수크는 흥정을 전제로 거래가 이루어지며, 이를 통해 상인과의 소통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마라케시의 시장은 단순한 상업 공간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섞여 있는 도시의 심장입니다. 오랜 역사를 품은 이 공간은 사람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방문자들에게 아프리카 북부 이슬람 도시의 진짜 얼굴을 보여줍니다.

 

2. 궁전과 정원에서 만나는 이슬람 건축미

마라케시의 또 다른 매력은 고요함과 섬세함이 어우러진 궁전과 정원입니다. 대표적인 명소인 바히아 궁전(Palais Bahia)은 19세기 말에 건축된 이슬람 양식의 대표작으로, 그 이름 자체가 ‘빛의 궁전’을 의미합니다. 내부에는 대리석 바닥, 정교한 모자이크 타일, 나무로 조각된 천장이 복잡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며 이슬람 건축의 미학을 보여줍니다.

바히아 궁전은 대략 150여 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방은 다양한 공간 감각과 장식미를 품고 있습니다. 일부 방은 마치 소규모 정원처럼 꾸며져 있고, 일부는 햇빛이 가득 들어오는 복도와 연결됩니다. 방문자는 천천히 걸으며 음영의 대비, 문양의 반복, 공기의 흐름 등을 체감하게 됩니다.

마조렐 정원(Jardin Majorelle)은 프랑스 화가 자크 마조렐이 설계하고, 이후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이 매입해 보존한 장소로 유명합니다. 푸른색을 주조로 한 정원은 선인장, 대나무, 야자수가 조화를 이루며 매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정원 내에는 베르베르 박물관이 있어 마라케시 고유의 전통 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쿠투비아 모스크(Koutoubia Mosque)는 도시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이자, 북아프리카 이슬람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건물입니다. 특히 77m 높이의 미나렛(탑)은 멀리서도 잘 보이며, 마라케시의 거의 모든 장소에서 이 탑을 기준 삼아 방향을 잡을 수 있습니다. 비무슬림은 내부 입장이 제한되지만, 외부에서도 건축의 리듬감과 비율, 장식의 섬세함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마라케시는 시장의 소란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품고 있는 도시입니다. 건축의 미와 정신적 고요함이 깃든 공간들을 통해, 여행자는 이슬람 예술의 깊이와 도시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3. 붉은 도시를 걷다, 모래빛 골목과 로컬 감성

마라케시는 건축 외장 대부분이 붉은 점토 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붉은 도시(Red City)’라는 별칭으로 불립니다. 사막 도시 특유의 먼지와 햇빛이 어우러져, 도시 전체에 따뜻하고 거친 느낌이 감돕니다. 골목골목은 좁고 구불구불하며, 그 안에는 현지인의 삶이 조용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골목들은 지도에 잘 표시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마치 도시 전체가 하나의 미로처럼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잃는 것이 두렵지 않은 이유는, 골목마다 예상치 못한 풍경과 사람들을 마주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작은 찻집 앞에서 민트차를 마시는 노인, 담벼락 그림자에 앉아 수공예품을 만드는 장인, 벽에 기대어 낮잠을 자는 고양이 등 마라케시의 일상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현지인과 인사하며 걷다 보면, 간단한 아랍어나 프랑스어 몇 마디로도 따뜻한 교류가 시작됩니다. 관광객에게 익숙한 곳에서는 영어가 통하지만, 진짜 마라케시의 매력은 로컬 감성을 공유하는 데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파는 빵 한 조각, 즉석에서 구워주는 타진 요리, 향신료 냄새가 가득한 거리의 공기까지, 모든 것이 도시의 일부가 됩니다.

도시 외곽으로 나가면 아틀라스 산맥의 전경이 펼쳐지고, 사막 지대에서는 낙타 체험이나 전통식 캠프 숙박도 가능합니다. 마라케시의 매력은 그 중심과 외곽, 고요함과 활기, 전통과 현대가 모래바람처럼 자연스럽게 뒤섞여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처럼 마라케시는 걷는 행위 그 자체가 여행이 되는 도시입니다. 매 순간 다른 장면과 감정이 이어지며, 방문자는 낯선 길 속에서도 자신만의 방향을 찾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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